<조커>Joker,2019 (스포 있음)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쿨미디어 | 기사입력 2019/10/10 [09:07]

<조커>Joker,2019 (스포 있음)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쿨미디어 | 입력 : 2019/10/10 [09:07]

▲ 조커를 빛나게 해 주었던 담배.  영화 '조커'에서 담배는 최고의 소품이었다.  음울하면서도 측은한 조커의 담배 피우는 모습.   사진=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조커는 지금까지 보았던 히어로물과는 다르다. 초월적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통쾌한 액션과 환상적인 판타지, 권선징악의 결말 같은 볼거리 요소는 없다. 주인공 아서 플렉의 대사와 감정 선에 집중한 새로운 조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울컥하게 되는 감정의 변곡점을 만났다. 아서 플렉이 발작과도 같은 웃음을 멈추지 못할 때는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영화가 끝났을 때 아서의 불온하면서도 암울한 기운이 고스란히 내게 전이 된 기분이었다. 그 여운이 너무 무겁고 진지해서 나를 괴롭혔다.

 

영화는 주인공 아서 플렉 (호아킨 피닉스)이 뉴스를 들으며 광대 분장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뉴스는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쥐들이 들끓는 고담시의 정화 작업을 위해 소외계층의 복지 지원부터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분장을 끝낸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광대 복장을 하고 거리로 나간다. 행인들 사이에서 광고판을 들고 춤추며 노래한다. 그 순간 지나가던 아이들이 아서의 광고판을 빼앗아 달아난다. 아서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쫓아간다. 으슥한 골목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은 쫒아오는 아서를 광고판으로 내리치고 가차 없이 짓밟는다. 아서는 고꾸라진 채 온몸으로 폭력을 견뎌 낸다. 아이들이 떠난 텅 빈 거리에 아서는 쓰러진 채 신음한다. 카메라는 신음하는 아서의 모습과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거리를 한참 동안 비추다 점차 사라진다.

 

▲   조커의 첫 씬으로 기억한다. 거리의 광고맨으로 나가기 전 아서 플렉이 광대 분장을 하고 있다. 검은 페인팅 물감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이 장면을 뇌피셜로 풀어보면 여기에는 복선이 깔려 있다. 이 역겨운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와 오물들과 아서 플렉을 동일시한 것이다. 쓰레기와 같은 존재, 그만큼 하찮고, 아이들에게조차 조롱거리가 되는 무기력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아서를 여기까지 뛰어 오게 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자 지금부터 잘 봐. 이 무기력하고 비루한 인간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감독의 의도대로 대다수의 관객은 무력감과 열패감에 젖어 있는 아서 플렉에게 연민을 느끼며 아서의 시선을 따라 영화에 몰입하게 될 터이다.

 

영화는 80년대 초 고담시의 황폐한 풍경을 배경으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불운한 삶을 조명한다. 고담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로 그려진다. 빈자는 부자를 증오하고, 부자는 빈자를 멸시한다.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시당국은 당장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부터 줄인다.

 

아서는 낡은 주택에서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우는 청년이다. 그의 롤 모델은 심야 코미디 쇼 진행자인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이다. 아서는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광고판을 들고, 소아병동의 위로 공연을 가는 등 일용직 광대 일을 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지는 병을 앓고 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기괴한 웃음은 그를 자주 곤경에 빠뜨린다. 그럴 때마다 아서는 종이 카드를 내민다. 거기에는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는 병이 있어요. 어릴 때 뇌를 다쳤거나 신경에 문제가 생겼대요.” 라고 적혀 있다.

 

늘 가던 병원을 찾아가지만 상담사는 성의 없이 언제나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드나요? 일기는 계속 쓰고 있죠?” 심지어 정부 지원이 끊겨 더 이상 무료로 약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서 상담사는 아서에게 일기장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일기장에서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이란 문장을 발견한다. ‘가치가취로 맞춤법을 틀리게 적음으로 아서가 고학력이 아님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버스에서 웃음이 멈추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는 아서 플렉의.  

 

아서 플렉이 거리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오는 길에 승강기에서 소피 듀몬드 (자시 비츠)를 만난다. 소피는 어린 딸과 함께 아서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살고 있다. 이후 아서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영화가 막바지를 향해갈 무렵, 아서 플렉은 마지막 구원자를 찾아가듯 그녀의 방을 찾아가 손을 내밀지만 그녀는 겁에 질러 제발 나가 달라고 간청한다. “복도 끝 방에 살고 있죠?” 소피의 이런 말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 동안 그녀와 연인 관계로 보였던 것은 아서의 망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퇴근한 아서에게 어머니 페니 플렉(프렌시스 콘로이 )은 우편함을 확인 했는지부터 묻는다. 토마스 웨인의 편지는 없었다고 말하자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라고 혼잣말을 한다. 토마스 웨인은 성공한 사업가이며 고담시의 유력 인사다. 현재 고담시 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페니 플렉은 토마스 웨인의 열혈 지지자다. 그녀는 오래 전에 토마스 웨인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것을 인연으로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며 매일 토마스 웨인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쓴다.

 

아서는 늘 모욕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그럭저럭 순응해가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열차 안에서 세 명의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남자들의 타깃은 여자에서 아서로 바뀐다. 당신들을 비웃은 게 아니라고, 내가 웃는 것은 병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폭력은 그를 공포에 떨게 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저주스러운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순간 탕! 첫 번째 살인 순간이다.

 

첫 번째 살인 후, 아서는 고담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광대 분장 상태였기에 아서가 범인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아서는 살인이 발견하게 만든(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힘에 이끌려 점차 악당 조커로 변해 간다. 이후 자신을 쫓던 경찰을 죽게 만들고, 동료를 잔인하게 죽인다. 그의 살인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그렇다고 묻지 마 살인처럼 아무나 죽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가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병든 노모를 보살피며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 아서 플렉이었다. 첫 번째 살인은 자기방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가 확인사살 한 그 순간부터 아서는 죽고 조커가 탄생한 것이다.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이 문장은 여기에 해당한다. 아서가 죽음(정체성)으로 이제부터 조커의 삶이 시작 된 것이다. 조커의 삶이 아서의 삶보다는 덜 불행하다고 가장 할 때 아서의 죽음은 조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조커는 더 이상 루저가 아니다.

 

▲   스틸컷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촬영 중 휴식 시간에 쉬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를 토드 필립스 감독이 찍은 것이다. 쉬는 동안도 그는 조커의 분위기가 고스란이 살아 있다.  가장 조커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조커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그의 폭력에 설득 당한다. 초반부터 가난하고 비루한 아서 플렉이 겪는 온갖 고통과 좌절을 충분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조커로 변한 아서가 살인을 해도 측은한 아서로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설득력을 가진다. 조커와 아서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지만 관객은 지금까지 아서 플렉의 분노와 슬픔에 빠져 있다. 이유는 또 있다. 아서 플렉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각지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우리들의 현실처럼 공감과 연민을 불러온다. 물론 잘 짜인 각본과 치밀한 연출, 호아킨 피닉스의 명품 연기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은 가능했다.

 

뉴스는 매일 살인마 광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토마스 웨인은 게으르고 비겁한 겁쟁이가 광대 가면 뒤에 숨어서 부자를 저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만이 확실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웨인의 발언에 분개한 빈자는 조커를 추앙하며 폭동을 일으키고, 고담시를 불바다로 만든다.

 

don,t forget smile.

이 문장은 신경 써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다. 조커가 머레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계단 위 벽에 쓰인 이 문장에서 ‘forget’부분만 지우는 장면이 나온다. ‘forget’을 지우면 ‘don,t smile’만 남는다. 아서에게 웃음, 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아서는 아픔과 슬픔과 분노의 상황에서도 웃는다. 물론 그 웃음마저도 처절할 정도로 비극적이다. 현실에서 그는 그 웃음 때문에 언제나 곤경에 처한다. 살인의 시작도 웃음 때문이었다. 그에게 웃음은 고통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강요된 웃음)

 

아서를 해피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어머니(프랜시스 콘로이)는 너는 세상을 웃기기 위해 태어났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정작 아서는 제대로 웃지도, 남을 웃기지도 못한다. 아서는 자신의 기원을 알게 된 후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아가 말한다.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어요.” 하지만 자신을 조커라고 정체성을 세운 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지치고 무거워 보이던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웃음엔 의지가 느껴진다. 더 이상 억지웃음이나 강요된 웃음이 아닌.

 

머레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조커는 정성스럽게 광대 분장을 한다. 혓바닥까지 하얗게 칠하며 머릿속에서 맴도는 문장을 떠올린다.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이 문장은 영화 전반에 거쳐 세 번 나온다. 나는 이 문장이 토드 필립스 감독이 숨겨둔 퍼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서 플렉은 이미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악의 화신 조커가 살고 있는 것이다. 번데기가 전혀 다른 모습의 나비로 다시 태어나듯 아서 플렉은 조커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 한 것이다. (뇌피셜)

 

마지막 상담 모습에서 영화 초반에 봐왔던 무기력하고 우울한, 아서 플렉은 찾아 볼 수 없다. 상담사에게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은 말해도 이해 못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상담실에서 나온 조커의 발걸음은 가볍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가 낭만적으로 흐르고, 조커는 복도를 지나 창가로 걸어간다. 리듬을 타며 춤을 추는 여유까지 보인다. 하얀 병원 복도에 찍힌 조커의 발자국은 핏빛이다. 영화는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난다.

 

▲   호아킨 피닉스 (조커역) 호아킨 피닉스는 실제로 구순구개열(언청이) 흉터가 있다.  영화에서 이 상처마져 조커를 위한 캐릭터 창조에 일조 한 느낌이 들었다.

 

이쯤에서 호아킨 피닉스의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왔으나 영화가 끝났을 때 조커의 모습만 떠올랐다. 분장하는 조커, 담배 피우는 조커, 춤추는 조커, 웃으며 우는 조커, 발길질을 견뎌내는 조커, 살인하는 조커. 이 모두는 아서 플렉이자 조커며 동시에 호아킨 피닉스다. 그의 손짓 하나에 외로움이 묻어났고, 한 발짝 걸음에 고통의 무게가 느껴졌다. 슬퍼할 기력도 느껴지지 않는 앙상한 등짝을 보았을 때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의 폭력을 지지했는지도 모른다그만큼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혹자는 영화 조커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아서 플렉이라는 미치광이가 저지른 소시오패스적 연쇄살인 정도로 판단할지 모른다. 그렇게 치부하기엔 메시지가 너무 무겁고 진지하다. 

 

최지송 기자 mnv27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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