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온에어

쿨미디어 | 기사입력 2020/02/04 [15:01]

단편소설-온에어

쿨미디어 | 입력 : 2020/02/04 [15:01]

온에어

                                                                                           

                                                                                                     최 지 송 

 

새벽 두 시, 나는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았다. 아프리카 티브이 앱을 터치하고 곧장 ‘민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의 방은 전날과 다름없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수명이 다된 듯 껌벅거렸고 책상 위에는 맥주 캔과 담배꽁초가 수북한 재떨이가 보였다. 벽에 바짝 붙여놓은 침대 위에는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것처럼 꼬질꼬질한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 아래 반쯤 채워진 대형 쓰레기봉투가 구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고개가 꺾인 소형 선풍기가 힘겹게 돌아갔다. 

 

민수의 팔은 빵빵하게 바람이 들어간 튜브 같았다. 팔 끝에 달린 손은 기이하게 작았다. 거대한 팔에 붙어 있는 작은 손은 잘못 조립된 인형처럼 어색했다. 민수는 작은 손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은 넝쿨처럼 제멋대로 뻗쳐 있었다. 큰 얼굴에 비해 눈과 입은 틈새처럼 작았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손을 보면 어려 보이는데 거뭇한 구레나룻을 보면 중년 사내 같기도 했다. 양손으로 번갈아 머리를 긁어대던 민수는 오른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다시 그 손을 고무줄 반바지 속으로 넣었다. 민수가 움직일 때마다 내 귓속에서 부스럭 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비대한 몸, 어눌한 말투, 추접한 행동까지. 민수의 모든 것이 역겨웠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듯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그림 = 조영길 

 

내가 민수의 방송을 보게 된 것은 민수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수많은 방송 제목을 훑어보다 나와 같은 이름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 반 창피함 반이었다. 민수는 팔십 년대 태어난 사람들에겐 흔한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민수가 세 명이었다. 그중에 한 명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그때 나는 민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자에 대한 취향도 같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또 다른 민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혹시 내가 아는 어릴 때 민수는 아닌지 나는 호기심에 끌려 민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날 이후 민수의 방송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나는 짬 날 때마다 ‘민수의 방’에 접속했다. 퇴근하고 집에서도 소파에 누워 아프리카 티브이를 보는 일이 잦았다. 컴퓨터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스마트폰이 편했다. 

 

아프리카 티브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는 다른 묘미가 있었다. 대부분의 비제이(Broadcasting Jockey)는 뭔가를 보여 주었다. 게임이나 요리, 먹는 방송이 많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속옷을 전시하기도 했다. 재능을 이용하여 공부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 비제이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과 카메라 각도에 신경을 썼다. 애청자와 팬클럽 수에 따라 상당한 수입이 따랐다. 얼마 전에는 인기 비제이의 억 소리 나는 연봉이 공개되기도 했다. 민수의 방송은 특별히 보여주는 것도, 주제도, 정해진 시간도 없었다. 이십사 시간 카메라를 켜 놓고 벌레처럼 꾸물거리는 장면을 공개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담배 생각이 났지만 참기로 했다. 나는 삼 개월 전에 담배를 끊었다. 복지과에 남자 직원은 나까지 네 명이었다. 그중 두 명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삼 개월 전 팀장마저 금연을 선언하자 어쩔 수 없이 나도 동참했다. 혼자만 담배를 피우면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달 전부터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내가 여전히 금연 중인 줄 알고 있었다. 늦게까지 회식이 이어질 때는 담배를 피운다고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된 마른장마로 방 안은 후텁지근했다. 나는 에어컨을 켰다. 바람을 쏟아내던 에어컨은 크르릉거리는 소리를 몇 번 내더니 멈춰 버렸다. 낡은 벽걸이 에어컨은 가끔 작동이 안 될 때가 있었다. 건물주는 내년에는 꼭 바꿔 주겠다며 올여름만 참으라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덥고 습한 공기가 와락 달려들었다. 나는 얼른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창가에 세워 놓은 복근 강화 운동기구가 눈에 띄었다. 구입한 지 이 년이 되었지만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어컨만 빼면 티브이도, 식탁도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처음 이 방에 들어올 때가 떠올랐다. 

 

공무원 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나는 육 개월의 대기 끝에 동주민센터로 발령받았다. 부모님은 가문의 경사라며 자랑하고 다녔다. 9급이란 말은 빼고 공무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친구들은 신의 직장이라며 부러워했다. 나는 주민센터 근처의 낡은 오피스텔을 얻어 세대주가 되었다. 나는 방 안을 채울 물건들을 사들였다. 홈쇼핑에서 운동기구를 샀고, 영화 감상을 위해 오십육 인치 벽걸이 티브이를 설치했다. 그중 할부로 산 슈렁큰 가죽 소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으나 침대 겸용이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 드디어 보통 사람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전 그날, 노인에게 허리를 반으로 접어 폴더 인사를 하며 사과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자 짜증이 치밀었다. 노인은 업무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가 업무가 시작되자 성난 얼굴로 다가왔다. 여기 담당자가 누구야! 공무원이 일처리를 이따위로 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이 노인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노인은 모든 공무원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의 눈빛과 말투는 권위적이었다. 살아온 시대와 함께 굳어 버린 의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인내력을 가지고 노인의 얘기를 끝까지 들었다. 노인은 기초수급 신청을 했는데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받고 온 거였다. 

 

나는 어떻게든 노인을 빨리 내 창구 앞에서 떼어내고 싶었다. 담당자가 외근 중이라 일단 댁으로 돌아가 계시면 자세히 알아본 뒤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네까짓 게 뭔데 돌아가라 마라야. 어르신 수급대상이 아니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재산이 많다던가....뭐 재산? 딸랑 집 한 채 있는 것도 재산이야. 이 나이에 집 한 칸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르신보다 어려우신 분도 많아요. 척 보니 말단 공무원 같은데 어디서 눈을 치켜뜨고 쳐다봐. 요즘 공무원들은 기본이 안 돼 있어. 서비스도 엉망이고 위아래도 없어. 타이밍은 이때였다. 시선을 내리깔고 허리를 접어 최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몸짓으로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대민 업무 원칙에 따라 우선 사과부터 했겠지만 그 순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순간 세상은 그렇게 잘못된 채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권을 쳐다봤다. 권은 바쁜 척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서류 파일들을 클릭했다. 내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자 노인은 성난 들개처럼 갸릉거리다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휑하니 나가버렸다. 노인이 나가자 권이 다가왔다. 자기도 참 답답하다, 그까짓 말 한마디가 뭐가 어렵다고. 그냥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서너 번 하고 속으로 욕을 해. 일단은 친절하게 비위를 맞춰 보내고 세상에 있는 모든 욕을 퍼부어 대. 그러면 꽉 막혔던 속이 좀 풀리거든. 권다운 방법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이틀 뒤 외근에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이 술렁거렸다. 내가 들어서자 모두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노인이 관할시 홈페이지에 나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던 것이다. 나는 그 일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졌다. 

 

월요일이라 아침부터 주민센터는 북적거렸다. 나는 잠을 설친 탓인지 온몸이 찌뿌듯했다. 직원들은 업무 준비에 바빴다. 미리 온 민원인은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렸다. 그들이 자꾸 나를 쳐다봤다. 왜 빨리 업무를 시작하지 않느냐는 눈빛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마주 보이는 나무 의자에 팔짱을 끼고 앉아 나를 쳐다봤다. 깡마른 체구에 각진 눈매,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이 교활한 인상을 풍겼다. 그의 손에 보건복지부 홍보용 안내장이 들려 있었다. ‘어르신이 행복한 세상’이라고 쓰인 말풍선 옆에 인기 여배우가 웃고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보임으로써 소리 없이 나를 압박했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노인은 꼼짝 않고 나를 지켜봤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 나오듯 쏘아봤다. 나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내내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동료들이 하나둘 나갔다. 나는 자원해서 연장 근무를 신청했다. 노인이 어딘가에 숨어 퇴근하는 나를 지켜볼 것 같아서였다. 텅 빈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들쑥날쑥한 의자들, 찾아가는 복지, 방문 일자와 위치, 나눔행사 일정이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권이 칫솔과 양치 컵을 들고 화장실에서 나올 것 같았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자기야 이것 좀, 하고 뭔가를 주문할 것 같았다. 권은 자기보다 어린 남자 직원에게 자기라고 불렀다. 듣기 거북했으나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권은 임기제공무원 십 년차였고 나이도 열두 살이나 많았으며 적극적인 성격에 붙임성도 좋았다. 반면 나는 이제 막 삼 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늘 커리어 우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보면 달려갈 아줌마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SNS로 수다를 떨었고,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 자랑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녀가 임기제공무원으로 들어와 십 년이 넘도록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자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다보았다. 거리는 익숙한 듯 낯설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경쟁률이 낮은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객지 아닌 객지 생활을 한 지 삼 년이 넘었다. 이 차로 양옆에는 사오 층짜리 상가 건물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야행성 동물처럼 밖으로 기어 나왔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이 층 당구장 간판이 있던 자리에는 언제부턴가 마음치유연구소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우울증, 대인 기피, 수면 장애, 마음비우기 같은 단어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계단 입구 양옆으로 분홍색 리본을 단 개업 화분이 보였다. 그 앞으로 기역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파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이어서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마음치유연구소를 올려다보았다. 아이가 여자의 팔을 당겼다. 여자는 아이에게 끌려가듯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이 시간 민수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민수는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모니터로 보는 민수의 모습은 스마트폰으로 볼 때보다 커 보였다. 셔츠가 배 위로 올라가 맨살이 드러났다. 뱃살이 쏟아질 듯 아래로 쏠려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들썩거리는 민수의 배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마치 해변에 떠밀려 온 거대한 해파리를 연상케 했다. 민수의 배를 바늘로 콕 지르면 투명한 액체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민수가 팔을 들어 목 언저리를 두어 번 긁적였다. 그리고 힘겹게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몸을 움직일 때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인용 침대는 민수의 몸무게를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였다. 두꺼운 어깨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등과 엉덩이로 이어졌다. 어느샌가 민수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시청자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게시판은 매니저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다정한 인사를 남기거나 대화를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민수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방송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독자는 삼만여 명에 이르렀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누적 시청자까지 합하면 오만 명이 훨씬 넘었다. 볼만한 콘텐츠도 없는 방송에 시청자가 이렇게 많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예민해졌다. 매스컴에서 연일 사건 사고를 보도했다. 가뭄에 농작물이 말라 죽자 농민은 술을 마시고 인근 농협에 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식수 공급을 받던 마을에서 물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주민 간 칼부림이 있었다. 신생 제습기회사 대표가 올림픽대교에 올라가 자살 소동을 벌였다. 민원인 중에는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밖은 더워 죽겠는데 여기는 추워 죽겠다는 둥, 이러고 냉방병에 걸렸다고 떠든다는 둥, 국민이 내는 혈세로 월급 받으면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근무하는 공무원이야말로 갑 중의 갑이라고 했다. 미니선풍기를 받으러 온 차상위계층의 중년 남자는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왔으니 줄게 있으면 빨리 더 달라고 졸랐다. 나는 알 수 없는 짜증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기초수급자가 권리인양 내 놓으라는 식이다. 비굴할 것까지야 없지만 누군가 열심히 일하고 낸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있으면 고마운 마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주위를 살피며 급하게 몇 모금 빨고 들어오곤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막 앉았을 때였다. 권이 눈짓으로 팀장을 가리키며 나를 찾는다고 했다. 둥글레차 티백이 담긴 머그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팀장은 내게 신용불량자였던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당혹스러웠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몰랐으면 했던 일이었다. 나는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마련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4학년이 되면서부터 취업에 매달렸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스펙도 변변치 않은 나는 언제나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특혜처럼 생색내던 학자금 대출이 나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내 말을 들은 팀장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대뜸 공무원 생활이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하지만 자세를 가다듬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팀장이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뭔가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며칠 전 권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가벼운 얘기 끝에 권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나도 공무원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는 나와 권밖에 없었다. 어쩌면 권은 내가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알고 있을지 몰랐다. 팀장 앞에서 돌아 나올 때 손이 떨렸다. 나는 얼른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여느 때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내가 신용불량자였던 것을 팀장은 어떻게 알았는지, 새삼스럽게 힘드냐고 묻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허둥대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옆자리의 동료가 소개팅 가느냐고 물었다. 벌써 몇 번째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그가 속도 모르고 깐죽거렸다. 나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그의 어색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외면하고 나갔다. 주민센터 정문을 나서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장이었다. 

 

장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취업이 되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일 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는 삼 년 동안 네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었다. 장은 내가 자리에 앉기 바쁘게 넋두리를 쏟아냈다. 요즘은 석, 박사까지 공무원 준비하고 있다는 거 아냐? 씨발, 대한민국은 공무원이 갑이야. 장은 연거푸 소주잔을 비웠다. 나는 선뜩 맞장구칠 수 없었다. 그 세계에 들어와 보니 우리가 꿈꾸던 곳이 아니었다고, 9급이건, 7급이건, 고시 출신이건 간에 계급 사회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녀도 9급에서 시작하여 1급까지 승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장에게는 어설픈 위로처럼 들리기 십상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술집을 몇 군데 더 돌았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장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 헤어지자는 내게 장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민수야, 공무원 자리 잘 지켜라. 장은 내 어깨를 잡고도 다리가 풀려 가끔 무릎이 꺾였다. 장이 내게 몸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내 신조가 뭔지 아냐. 잘리기 전에 나가는 거야. 나는 한 번도 잘린 적이 없어. 늘 내가 먼저 사표를 냈거든. 장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우리를 힐긋거렸다. 장을 택시 뒷자리에 간신히 밀어 넣고 집에 왔을 때 한 시가 지나 있었다. 목이 탔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냈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한 손에는 캔 맥주를,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민수 방송을 보았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오피스텔은 내가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민수의 방은 휴지와 음료수 캔이 널려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민수가 들어왔다. 손에 사발면이 들려 있었다. 민수는 어질러진 물건을 발로 밀치고 책상에 앉았다. 사발면이 이유식 그릇처럼 작아 보였다. 채팅 창에 레전드라는 닉네임이 나타났다. 사발면에 바퀴벌레 넣어서 먹냐? 라면 국물 존나 맛있겠다. 니가 아프리카 티브이 비제이 중 제일 찌질한 거 알쥐? 그는 왜 경멸하면서 민수의 방송을 계속 보는 것일까? 그 속마음은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낫지, 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몰랐다. 민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사발면 뚜껑을 열었다.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한 번 뒤집은 다음 바로 입에 가져갔다. 젓가락질을 몇 번 하지도 않아 라면 그릇이 비워졌다. 책상 옆에 소형 선풍기가 힘겹게 붕붕거리며 돌아갔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선풍기의 수명이 먼저 끝날 것 같았다. 

 

민수의 반응이 없자 레전드는 머쓱해했다. 다음 순간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민수에게 별풍선을 쏘았다. 무려 오백 개였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오만 원. 구경만 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한마디씩 남겼다. 헐, 대박, 민수님 로또 맞았네, 레전드님 왜??? 그제야 민수는 카메라를 향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입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어, 왜 저에게? 본인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별풍선 오백 개를 받은 반응치곤 맥 빠지는 소리였다. 별풍선은 시청자가 비제이에게 선물하는 스폰서 개념의 아이템이기도 하고 시청료이기도 했다. 별풍선은 곧바로 현금화가 되어 비제이의 수입이 되었다. 아프리카 티브이에서 추천 한 번만 눌러 줘도 온갖 애교를 부리는 여자 비제이가 넘쳐났다. 일부 여자 비제이는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별풍선을 유도하기도 했다. 별풍선 개수에 따라 시청자를 대하는 비제이의 태도와 말투가 달라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덤덤한 민수의 반응에 재미있어했다. 민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상 위에 있는 1.5리터짜리 콜라를 병째 마셨다. 마신다기보다 쏟아붓는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전드가 민수의 행복과 불행은 오직 먹는 걸로 구분된다며 키득거렸다. 너는 취업도 안 하냐, 공무원 시험……. 레전드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채팅창에서 사라졌다. 메시지가 한 줄 떴다. “레전드님이 금지어를 사용하여 자동 퇴장 조치합니다.” 그렇다면 민수가 지정한 금지어는 시험? 비제이가 정하는 대부분의 금지어는 욕설이나 모욕감 드는 단어였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 있는 단어를 추가했다.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비제이가 지정한 금지어를 시청자는 알 수 없었다. 무심코 금지어를 사용하면 그 방에서 강제 퇴장되었다. 민수는 그동안 온갖 욕설과 모욕적인 글을 올려도 제재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열린 화장실을 찾은 듯 민수의 방에 오물 같은 언어를 배설했다. 헤벌쭉 입을 벌리고 있는 민수의 접힌 목살 사이로 번들거리는 땀이 배어 나왔다. 거대한 몸집의 민수를 보면서 내 모습은 지극히 보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른장마가 계속되었다. 연일 먹구름이 끼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전국의 다목적댐은 수위가 내려가고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더위를 피해 종일 민원실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권은 취약 계층 가정방문을 나가고 자리에 없었다. 정확한 사례 관리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상부에서는 독거노인이나 알코올 중독자 가정방문 사례 관리 실적을 요구했다. 이런 날은 권의 업무까지 내가 맡았다. 정시 퇴근의 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중앙부처와 해당 지자체에서 떨어지는 수백 가지의 복지 업무가 주민센터로 집중되었다. 인력이 충원되면 더 많은 복지제도가 생겨났다. 밀려드는 민원인과 민원 전화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갔다. 

 

자기야 부탁해. 외근에서 돌아온 권이 내게 서류 파일을 내밀었다. 최종 문서 정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같은 팀끼리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하나 어느 때는 지극히 사적인 일도 시켰다. 언젠가는 먼저 출근한 권이 나에게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스타킹을 사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동안 일을 가르쳐주고 혼자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앞에 앉아 함께 먹어 준 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들어줘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스타킹을 받고 고맙다는 말만 하고 스타킹 값을 주지 않을 때였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는 권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고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권이 뭔가를 부탁할 때의 버릇이었다. 

 

권은 언제나 긍정적이었다. 아니, 긍정적인 척했다. 나는 공무원이 되고부터 긍정이니 의지니 하는 말이 싫어졌다. 공무원에게 의지는 필요 없었다. 이곳에서 의지란 자기 고집으로 비치기에 십상이었다. 언젠가 회식이 끝나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권이 술기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9급부터 시작한 사람은 상부의 지시에 복종하면서 세월만 가기를 바라면 된다고, 창의나 의견은 필요 없다면서 예스맨이 최선책이라고 했다.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 창문을 내리고 대표적인 모델이 팀장이라고 덧붙였다. 

 

내 자리는 민원실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첫 번째 자리인 일 번 창구였다. 그래서 나는 민원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인감증명서를 떼거나 전입신고 하러 오는 사람도 내게 물었다. 복사지가 부족하거나 자판기가 고장 나도 내게 와서 말했다. 출입문 입구에 비치된 수십여 종의 팸플릿 정리도 내 몫이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이 하루에 십여 명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직업상 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표정으로 답해 주었다. 그것은 육체노동인 동시에 감정노농이었다. 날이 갈수록 일할 의욕이 떨어졌다. 보람도 없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 피로와 스트레스만 쌓였다. 나는 술과 담배, 기름진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권이 건네준 서류 파일을 책상 위에 놓고 화장실로 갔다.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했다. 종이 타월을 뽑아 얼굴을 닦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나는 백칠십팔의 키에 몸무게는 늘 팔십을 웃돌았다. 스스로 보통은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보통의 삶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지금 거울 속의 나는 보통이라 말할 수 없었다. 와이셔츠 단추가 목을 조였다. 팔을 올리면 셔츠 겨드랑이가 뜯어질 것 같았다. 꽉 끼는 셔츠 위로 불룩하게 나온 아랫배가 보였다. 일찍이 결코 닮지 않겠다고 했던 그런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기 번호를 누르고 고개를 들자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마주 보이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노인의 처진 두 볼이 심하게 씰룩거렸다. 나는 못 본 체했다. 노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했다. 노인은 볼일도 없이 날마다 민원실을 찾아 한동안 나를 지켜보다 가곤했다. 나에게 일종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노인은 나의 처벌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동시에 얻어내려 했다. 이 기회에 억지를 부려 수급자가 되려는 속셈이었다. 노인의 서류는 문제점이 많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한 달 전에 부동산을 매각한 것도 그렇고, 장애인등록증을 부착하고 다니는 중형 자동차도 그랬다. 부동산 매각 대금은 아들의 사업 자금으로 들어가 일 원도 없다고 했다. 몇 달 전까지 소유했던 콘도 회원권도 아들에게 증여했다. 그는 각종 복지 혜택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받아 가고 있었다.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번호표를 내밀고 민원인석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어떤 업무로 오셨어요?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노인이 조용하고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네가 거기에 앉아 있는지 두고 볼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이 공무원이랍시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나라꼴이 이 모양이지. 나는 못들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하기가 싫었다. 손끝이 떨렸다. 쌍욕을 들었을 때보다 더한 수치심이 들었다.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삼 년씩이나 고시원에서 고생했나 싶었다. 차라리 징계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더는 노인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연금 생활을 상상하면서 이십 년만 버티고 때려치우겠다던 선배들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이십 년을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뭘 위해 사는 건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민수는 침대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발톱을 깎는 중이었다. 아니, 발톱을 깎으려고 애를 써도 손이 발톱에 닿지 않았다. 민수의 작고 살진 손가락이 코끼리 다리 같은 종아리를 꽉 붙잡았다. 발가락을 잔뜩 오므리며 최대한 팔을 뻗었다. 은색 손톱깎이는 거인의 손에 들린 귀이개 정도로 비쳤다. 민수가 좀 더 머리를 숙였다.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민수는 대단한 중노동을 하듯 몇 번이나 머리를 들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오로지 발톱을 깎으려는 것에 온힘을 다했다. 민수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별풍선을 쏘고 초콜릿과 스티커를 선물했다. 화면 가득 오색 풍선이 떠다녔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민수에게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것일까? 자신보다 불완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머무르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게시판에 올라온 오래전의 글을 읽다가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누군가 민수에게 당신은 왜 사느냐고 물었다. 당신은 왜 죽지 않느냐고 묻는 듯했다. 뜻밖에 민수의 답글은 “살고 싶으니까요.”였다. 댓글 조회 수가 만 번이 넘었다.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게시판에서 시선을 돌리자 왼쪽 책장의 낯익은 책이 눈에 들어 왔다. 표제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노란색 표지는 재정국어, 빨강과 녹색이 사선으로 들어간 표지는 행정법총론이었다. ㅂ출판사에서 나온 9급 공무원수험서였다. 분명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텐데 왜 이제야 그것이 눈에 들어왔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책장 주변에 포스트잇이 드문드문 붙어 있었으나 메모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보았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배우자 직업 선호도 1위, 초등학교 장래 희망 1위가 공무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도 공무원을 꿈꾸다 낙오자가 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인지 몰랐다. 

 

 그림 = 조영길 

 

감봉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징계는 면직으로 결정 났다. 다들 이례적이라고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신용불량자 이력 때문이라 했고, 누군가는 노인의 인맥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공무원의 기강을 위해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안하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원실 출입문을 나설 때 입구에 떨어진 복지정책 안내장이 눈에 띄었다.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을 지원하여 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안내장을 밟고 밖으로 나갔다. 

 

팔월의 오후 여섯 시는 한낮이었다. 정수리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나는 무작정 걸었다. 학자금 대출금으로 다니던 대학 생활과 고시원에서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허무했다. 땀에 젖은 와이셔츠가 등짝에 척척 붙을 때 눈에 띄는 술집에 들어갔다. 구석 자리에 앉아 소주를 시켰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곳을 나와 또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고 과일 안주를 먹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다 끊어졌다.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옆구리에서 짓눌려 있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였다. 이미 훤하게 밝은 아침이었다. 이른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매미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집 방향이라고 짐작되는 쪽으로 걸었다.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편의점을 나서자 아침부터 찐득한 공기가 숨이 막혔다.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온갖 불쾌한 것들과 합쳐져 피부 밖으로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쨍쨍한 길 위로 한 걸음씩 떼어놓을 때마다 콜타르가 묻어 오르듯 발이 무거웠다. 나는 오피스텔 방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쓰러졌다.

 

천둥소리에 잠이 깼다. 며칠이 지났는지 날짜를 가늠할 수 없었다. 어슴푸레한 방 안은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호했다. 나는 소파 아래 있는 생수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 몸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 몸이 둔했다. 나는 느리게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바닥에는 빈 맥주 캔과 컵라면 용기가 뒹굴었다. 먹다 남은 컵라면 국물에 담배꽁초가 떠다녔다. 소파 위에는 벗어 놓은 옷가지가 쌓여 있었다. 그 옆에 반쯤 차 있는 쓰레기봉투가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걸까? 스마트폰은 꺼져 있었다.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날짜를 보았다. 이틀이 지나 있었다. 밀린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액정에 나타났다. 몇몇 동료들의 위로 문자가 와 있었다. 그중 권의 문자도 있었다. 이번에 자신은 본청으로 부서 이동이 있을 예정이라는 것과 팀장은 과장으로 승진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의 문자도 두 통이나 있었다. 이번 시험도 예감이 안 좋다고 했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뉴스 속보가 떴다. 중부 지방은 오후에 비 예보가 있지만 해갈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민수가 궁금했다. 아프리카 티브이 앱을 터치했다. 민수의 방은 여전히 방송 중이었다. 민수는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움직임이 없었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딘가 횅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청자 게시판에 새로 올라온 글이 보였다. 어이 일어나! 아직도 자는 거야? 죽은 척하지 말고 먹방이라도 보여 줘. 나는 뚫어 질듯 스마트폰의 화면을 들여다봤다. 민수는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걸까? 나는 조바심이 일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어나 민수야. 제발, 일어나란 말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민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민수의 얼굴은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듯했다. 그는 느릿느릿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2014년 김유정신인문학상 당선작

 

최지송 기자 mnv27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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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동 2020/02/09 [07:48] 수정 | 삭제
  • 이 시대 인간들의 모습인가요? 인물 묘사가 뛰어나네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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